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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춘광 사설) 구름 사이로 잠깐 비추는 봄 햇살

by 도라히몽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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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appy Together

홍콩의 유명한 배우이자 감독인 '왕가위'의 영화이지만 어린 감수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때에 건성으로 한 번 본 것이 다인지라 인상 깊게 남진 않았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참 인간미 넘치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화양연화'에서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가장 서정적으로 그려낸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는데 '해피투게더'는 '사랑이란 것에 보편적인 형태는 없다'는 아름답기만 한 인간의 감정을 잘 그려낸 영화였습니다.

몽환적인 그림이나 사진을 영화로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과 연속적인 흑백과 컬러의 반복되는 장면들, 강렬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분위기들이 왕가위 감독 특유의 느낌을 잘 살려낸 작품인 것 같습니다.

2. 두 남자의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저 평범하지만은 않은 사랑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는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은 이들이 재회하기 전까지의 장면들이 흑백 영상으로 펼쳐지며 영화가 시작됩니다. 무덤덤해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보영'을 열렬히 애정 하는 '아휘',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둘의 감정 변화와 갈등 양상은 일상의 여느 연인에게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줍니다.

언젠가 보았던 '이구아수 폭포'에 가겠다며 홍콩에서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로 떠난 이 둘은, 이구아수 폭포는커녕 낯선 나라에서 길을 잃은 채 이별하게 됩니다. 그 뒤 '아휘'는 탱고바에서 일하며 홍콩으로 돌아갈 돈을 모으고, '보영'은 그런 그에게 갑자기 찾아와 다짜고짜 다시 시작하자고 말합니다. 

처음에 '아휘'는 그의 다시 시작하자는 말에 거절하지만, 다시 돌아온 보영의 다친 얼굴과 양손을 보고서는 그를 자신의 집에 거둬들이게 됩니다. 

'아휘'는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사랑에 진지하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남자이지만, '보영'은 자유로운 연애 스타일을 선호하고 상대에게 금방 질려 하면서도 혼자가 되면 다시금 외로워지는 성격으로 이 둘은 참 대조적입니다. 

손을 다쳤던 보영과 함께 주방에서 탱고를 추며 행복한 둘의 시간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요, 왜 주방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들었지만 햇살이 비치는 그곳 주방에서 추는 짧은 탱고는 매우 인상 깊은 장면이었습니다. 마치 제목을 암시하듯이요.

이별 후 다시 시작하는 연애는 과연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이구아수 폭포에 가자고 한 이 둘의 약속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요? 하지만 다시 재회하더라도 보영이 떠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아휘'였습니다.

자신이 먼저 떠났지만 아휘를 그리워하는 보영은 끝내 약속한 장소인 이구아수 폭포에 함께 다다르지 못합니다.  

 

3.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 같은 사랑

'왕가위' 감독 특유의 분위기들과 내레이션이 이끌어가는 서사가 돋보인 영화였습니다. 

구름 사이로 잠시 비추는 봄 햇살(원제:춘광 사설)을 가장 행복했던 때로 비유한다면 아마도 '아휘'와 '보영'의 춘광 사설은 주방에서 탱고를 함께 추던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휘와 보영의 사랑 방식에는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왜 사랑하면서 서로를 상처 입히고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는 것일까요? 아휘는 사실 보영의 손이 낫지 않기를 바랐고, 아픈 그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고 상처를 주면서까지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존재들처럼 보였습니다.

보영의 틀어져 버린 무언가가 아휘를 계속해서 괴롭히지만, 아휘는 보영의 다친 손을 핑계로 그를 놓아주지 못하는 장면을 보면서 사실 아휘에게도 보영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끝난 사랑만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이 전부였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회자되면서 감명 깊게 다가오진 않았을 겁니다. 끝난 사랑의 여과없는 잔해들이 덤덤하게 전해졌기에, 그리고 그것들을 아주 아름답게 그려냈기에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또 아휘가 결국 혼자 이구아수 폭포에서 보영을 그리워하는 장면과 결국 보영을 놓은 그가 마지막에 본인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누군가를 생각하는 장면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헤어진 연인들이 다시 만나려 한다면 보통 이별과 재회를 반복한다는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때때론 수많은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좌절하곤 하는데 영화 '해피투게더'는 그 좌절을 제일 잘 표현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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