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탄생
1942년 독일 출생인 '롤프 슈벨' 감독은 함부르크 대학에서 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했습니다. 1968년부터 독일 방송에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을 연출해 왔고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만든 계기는 자신이 어렸을 때 개최되었던 국제 민속음악회를 방문했는데 그때 '글루미 선데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당시 가수가 '글루미 선데이' 노래에 관련된 스토리를 얘기해 주었는데요, 그 곡이 자살을 부추겼다는 설명을 듣고서는 오히려 더 관심 있게 노래를 감상했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편, 영화 '글루미 선데이'는 한국에서 2000년에 개봉을 하여 3만 4천여 명을 동원하고 막을 내렸는데요, 개봉 당시 홍보 부족 등으로 관객 동원 면에서는 조금 부진하였지만, 저와 같은 네티즌들이 영화의 진가를 알아보고 20여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작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죠.
영화의 배경은 노래가 실제로 작곡되었던 1930년대 헝가리 부다페스트입니다.
'글루미 선데이'는 단순히 세 사람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니 생각 없이 가볍게만 본다면 그저 사랑 영화라고만 생각될 영화가 전반부에 이미 소개되는 음악으로 인해 그것만이 아닐 거라는 것을 알려 줄 것입니다.
2. 사랑하는 세 사람의 부다페스트
시작은 60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자신감 넘치고 다정한 남자 '자보(조아킴 크롤)'와 그의 연인 '일로 나(에리카 말로 잔)'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운영하는 작은 레스토랑에 한 피아니스트가 들어오게 됩니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는 아름다운 '일로 나'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자신이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를 그녀의 생일에 선물합니다.
'일로 나'의 마음도 '안드라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차마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던 '자보'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한다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한편, 발매된 '글루미 선데이' 노래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지만 연이은 자살 사건들에 관련이 되어 있다는 소문에 휩싸이게 됩니다. 설상가상 평화롭던 부다페스트에 나치가 점령하게 되면서 '일로 나'를 짝사랑한 또 다른 남자인 '한스(벤 벡커)'가 독일군 대령이 되어 레스토랑에 나타납니다. 이 시게 독일군이 유대인 학살을 시작하는데요, 독일군 '한스'는 예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유대인 '자보'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일로 나'와 '자보' 그리고 '한스'를 치욕스럽게 만들고 이를 참지 못한 '안드라스'는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한 뒤 자살을 합니다.
마지막 존엄마저 잃어버린 '자보'도 죽으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스스로 죽는 선택조차 못하고 독일군에게 끌려가게 됩니다.
다시 60년이 흐른 후 레스토랑에서는 뻔뻔하게 본인 생일파티를 하러 온 '한스'가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노래를 듣던 중 심장마비로 죽고 마는데요, 그날 레스토랑에 남아 설거지를 하던 '일로 나'는 심장이 멈추는 약이 담겨있는 병을 씻으면서 '글루미 선데이'를 흥얼거립니다.
3. 빛나던 부다페스트의 우울한 일요일
한없이 아름답고 세계 3대 야경 명소로 유명한 부다페스타는 여행하기 직전에 보려고 아껴둔 영화였는데, 최근 '톡 파원 24시'라는 TV프로그램에 부다페스트가 나와서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지식을 듣고서 바로 영화로 보고 싶다는 생각에 보게 되었습니다.
부다(구시가지)와 페스트(신시가지) 사이를 흐르는 도나우 강의 아름다움이 이 영화의 배경으로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나우 강변에 펼쳐지는 '부다 성'과 '어부의 요새', 그리고 화려한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한 아경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역사 유적지인 만큼 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움과 함께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의 '자보'와 '안드라스'가 선택한 반쪽짜리 사랑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일로 나'는 두 남자와 함께 번갈아가면서 사랑을 했고, '자보'와 '안드라스'는 그녀에게 두 남자를 사랑하는 이기적인 여인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끝까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자살을 한 안드라스의 죽음에 영화 속 메시지가 강하게 담겨 있는듯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대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글루미 선데이'의 음악과 함께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죠.
그녀가 선택한 삶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삶과 죽음, 그 경계에 있는 많은 것들을 떠올려보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글루미 선데이'는 매혹적이고 암울한 분위기의 노래부터가 1933년의 시대를 잘 나타내 준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라디오를 켜기만 하면 나올 정도로 대유행을 했었고 경제 대공황이었던 당시의 암울한 분위기 때문인지 높은 자살률이 있었다는 오해도 있었는데요, 작가는 이 황당한 속설에 상상을 더해서 역사적 의식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메시지를 영화에 잘 담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답게 빛나기만 하던 부다페스트의 일요일이 독일군의 점령으로 인해 한없이 우울한 일요일로 변해버린 것처럼 영화가 끝나며 흐르는 '글루미 선데이'는 영화에서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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